비회원 신분으로 메이저 제패한 구와키 시호 이야기
흰 공 대신 형광 노란색 공을 쓰는 선수가 메이저 대회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렸습니다. 화려한 네일과 염색한 금발, 남다른 패션으로 눈길을 끌던 2003년생 일본 선수 구와키 시호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이 우승에서 정말 눈여겨봐야 할 대목은 옷차림이 아니라, 그가 아직 LPGA 투어 정식 회원도 아니었다는 사실입니다.
비회원이 메이저를 우승하면 벌어지는 일
구와키는 3일 한국 시각 기준 잉글랜드 로열 리덤 앤드 세인트 앤스 골프 클럽에서 열린 AIG 여자오픈 4라운드를 최종 합계 5언더파 279타로 마쳤습니다. 독일의 에스터 헨젤라이트와 동타를 이뤄 연장에 들어갔고, 연장 2차전에서 파를 지킨 구와키가 보기를 범한 헨젤라이트를 제치고 우승했습니다. 우승 상금은 150만달러, 원화로 약 21억원입니다.
JLPGA 투어 소속인 구와키는 원래 올 시즌 메이저 대회에 출전해 경험을 쌓은 뒤 연말 LPGA 투어 퀄리파잉스쿨에 응시할 계획이었습니다. 정식 회원이 아니면 시드가 없으니 매 시즌 예선을 다시 치러야 하는 처지였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이번 우승으로 그 과정을 건너뛰고 곧바로 LPGA 무대에 설 자격을 얻었습니다. 실력으로 증명해야 하는 자격시험을, 대회 우승으로 한 번에 통과해버린 셈입니다.
JLPGA 투어에서 뛰던 구와키는 올 시즌 2승을 포함해 통산 5승을 거둔 스타지만, LPGA 무대에서는 사실상 무명이었습니다. 세계 랭킹도 46위에 그쳤습니다. 메이저 대회는 비회원도 초청 형식으로 출전할 수 있는 경우가 많아, 이번처럼 무명 선수가 단숨에 정상에 오르는 이변이 종종 나옵니다.
2019년 시부노, 2026년 구와키
이런 이변이 처음은 아닙니다. 2019년 같은 대회에서 우승한 일본의 시부노 히나코도 당시 LPGA 비회원 신분이었습니다. 그해 JLPGA 투어에 갓 데뷔한 신인이었고, 해외 대회 출전 자체가 처음이었습니다. 공교롭게도 시부노와 구와키는 둘 다 오카야마 지역 출신입니다. 구와키는 우승 후 "오늘도 시부노 선배가 잘하라는 메시지를 보내줬다"며 "우리는 친자매 같은 사이"라고 말했습니다.
한 지역에서 7년 간격으로 같은 대회 우승자가 나왔다는 우연 이상으로, 이 둘의 공통점은 준비 안 된 무대에서 오히려 부담 없이 자기 경기를 했다는 점입니다. 구와키는 지난해 이 대회에 처음 출전했다가 컷 탈락했는데, 당시 강한 바람에 고전했던 경험이 이번 대회에 오히려 도움이 됐다고 밝혔습니다.
기록으로 본 우승의 배경
키 163센티미터인 구와키는 장타보다는 정교함이 강점인 선수입니다. 대회 나흘간 그린 적중률 80.56퍼센트로 전체 출전 선수 중 1위를 기록했습니다. 이번 대회 코스는 항아리 벙커가 170개에 육박하는 링크스 코스여서 유해란, 세계 랭킹 1위 넬리 코르다 같은 정상급 선수들도 기복이 심했습니다. 그런 조건에서 구와키는 1라운드부터 3라운드까지 줄곧 2위 자리를 지켰고, 최종 라운드에서도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18번홀에서 벌어진 연장 1차전에서는 티샷이 러프에 빠지는 위기가 있었지만, 세 번째 샷을 홀 가까이 붙이며 넘겼습니다. 정확성 위주의 플레이 스타일이 압박감이 큰 순간에 오히려 힘을 발휘한 장면입니다.
2013년 이후 끊긴 한국 선수의 3연속 메이저
이날 관심을 모았던 또 다른 이야기는 유해란의 도전이었습니다. 2013년 박인비 이후 13년 만의 LPGA 투어 메이저 3연속 우승을 노렸던 유해란은 공동 2위로 최종 라운드를 시작했지만 3타를 잃으며 공동 6위로 마무리했습니다. 이 대회에서 유해란의 종전 최고 성적이 2023년 공동 21위였다는 걸 감안하면, 본인은 "10위 안에 든 것만으로도 행복하다"고 말했습니다. 3라운드까지 선두를 달리던 미국 교포 예리미 노는 3위, 코르다는 공동 4위로 대회를 마쳤습니다.
패션이 아니라 태도의 문제
구와키의 화려한 옷차림과 형광 노란색 공은 분명 시선을 끄는 요소였지만, 정작 본인이 강조한 건 따로 있습니다. 그는 "일본에서나 여기서나 외모가 눈에 띄는 선수 중 한 명일 것"이라며 "남들과는 다른 걸 좋아하고 그런 모습이 내게 자신감과 행복을 준다"고 말했습니다. 결과가 뒷받침되지 않았다면 그저 튀는 선수로 남았을 이 스타일이, 메이저 우승과 함께 그의 정체성으로 자리 잡은 셈입니다.
구와키는 우승 소감에서 최근 구마모토 지진 피해자들의 회복을 기원한다는 말도 잊지 않았습니다. 우승 파티는 화끈하게 예고했습니다. "술 마시는 걸 좋아해서 오늘 밤에 위스키 소다를 양껏 마실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비회원으로 출전한 대회에서 커리어를 바꿔놓은 우승을 거둔 하루치고는, 소감마저 그다운 방식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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